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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l]샐러리맨 이야기

인연 - 05

영태의 자리는 에어컨에서 세번째 떨어진 줄 중앙에 있다.

에어컨 바람이 가장 시원하게 들이치는 곳이다. 물론 겨울엔 온풍이 불어 따뜻하다. 사실 졸리다.

어쨌든 영태가 그 좋은 자기 자리로 향하던 중이었다.

"끼이익~ 콰당!"

등받이의 갈라진 나뭇결에 셔츠자락이 끼어 의자를 잡아 끌어 넘어뜨렸다.

지연은 무심결에 소리가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바로 옆자리 책상에 대출중이던 그 책이 있었다.

잠시 시선이 머문 순간부터 가슴 깊숙한 곳에서 물결치듯 흥분이 일었다.


늘 다니던 곳이다.

일부러 끼우기도 어려울 것 같은 곳에 셔츠자락이 끼었다.

몇 안돼지만, 사람들의 시선을 상상한 영태는 창피했다.

'아, 쪽팔려'

영태는 의자를 일으켜 세우다 자신을 보고 있는 여자를 보았다.

어색한 눈웃음을 지어보이고 자리에 가서 앉았다.

'아 씨.. 뭘 빤히 쳐다보고그래.. 쪽팔리게..'

이런 상황에선 적어도 2시간은 앉아 있어야 사람들 뇌리에서 좀전의 이벤트가 잊혀진다.


지연은 옆자리 책상에 꽂힌 책들을 살폈다.

꽂힌 책들을 보면, 대충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유심히 보았지만 특별히 어떤 것을 준비중인 지 모르겠다.

일단 중.고등학생은 아니었다.

자리주인은 아직 오지 않았다.


영태는 오른쪽 끝자리에서 자꾸만 자기를 쳐다보는 듯한 시선을 느꼈다.

'아.. 씨, 저여자 뭐야? 자꾸 쳐다보고.. 신경 쓰이게.. 담배나 한 대 피워야겠다.'

책상에 놓인 말보로 담뱃값에서 한 개피를 잡아 뺐다.

"툭! 타다당!"

책상 끝에 올려 두었던 핸드폰을 건드렸다.

핸드폰 겉 케이스가 떨어져 나가며 더 요란한 소리를 냈다.

의식중에 있는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돌겠네!'

"죄송합니다."

작은 소리로 양해를 구했다.

영태는 고개를 숙이고 핸드폰을 주워 밖으로 나갔다.


자꾸 실수를 하는 남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 남자가 죄송하다고 한다.

지연은 괜찮다는 눈인사를 했다.


급히 나오는 바람에 라이타를 두고 나왔다.

도서관 밖으로 나온 영태는 불을 빌려 연기를 피우고 핸드폰을 살폈다.

얼마전 마음먹고 새로 장만한 핸드폰이다.

겉케이스 한쪽이 깨졌다.

'오늘 무슨 날인가? 아침부터..'

영태는 담배 한 모금을 깊숙히 빨아들였다.

내뱉은 담배 연기처럼 그 여자의 얼굴이 흐릿하게 나타났다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