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novel]샐러리맨 이야기

인연 - 06

해가 느린 걸음으로 먼 산을 넘어도, 옆자리 주인은 오지 않았다.

'오늘은 오지 않나보다.'

지연은 자리 주인이 나타나 양해를 구하고 책을 먼저 볼 수 있기를 바랬다.

오전에 일었던 흥분은 이미 자취를 감췄다.

배가 고파왔다.

아까 연거푸 실수를 하던 남자가 힐끗 힐끗 쳐다본다. 기분 나빴다.

지연은 내일 일찍 나오기로 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직도 끝자리의 여자가 가끔 쳐다본다.

'의자 넘어뜨리고 핸폰 떨어뜨렸다고 이렇게 오래 쳐다보나?'

영태는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자신도 힐끗힐끗 쳐다보고 있다.

보면 볼 수록, 평범하지만 한겨울 흰 눈 같이 하얀 여자의 얼굴이다.

소박한 이끌림에 이끌려 여자의 얼굴에 눈길이 갔다.

여자가 일어섰다.

'벌써 가나?'

일어서서도 영태쪽을 한 번 살피고 무언가 생각하더니 뒤돌아서 나갔다.


병수는 정형외과에서 물리치료를 받고 집으로 와서 공부했다.

의사는 인대가 조금 늘어났으니, 당분간 통원치료하고 운동은 삼가라고 했다.

화장실, 정보자료실, 식당, 휴게실 등 활동반경이 도서관보다는 집이 좁았다.

집은 도서관보다 더웠지만, 모처럼 먹는 어머니표 점심은 맛 있었다.

이런 면에서 집이 편했지만, 역시 집중하기는 도서관이 나았다.

책을 보다가 어느순간 컴퓨터를 하고 있다던지, 침대에 누워있었다.

오후에 영태가 전화를 걸어 '어떤 못생긴 여자가 자꾸 쳐다본다'며 짜증을 냈다.

어느덧 매미 소리는 잠잠해지고 귀뚜라미 소리가 들렸다.

창문을 다 열어 놓아도 한여름 저층 아파트에 시원한 바람이 불어들기는 쉽지 않은가보다.

달궈진 아파트 벽과 아스팔트는 달궈진 채로 여름을 날 모양이었다.

무심코 올려다 본 창 밖 하늘엔 별이 하나 희미하게 보였다.

어릴적 여름 밤하늘이 그리웠다.

며칠간 집에 있기로 했다.





지연은 일찌감치 집을 나섰다.

오늘 그 자리 주인을 만나면 양해를 구하고 책을 빌릴심산이다.

어제 그 자리에 앉았다.

이른 아침이어도 여전히 날은 더웠다.

그 기분 나빴던 남자가 어슬렁 거리며 거의 빈 가방을 메고 나타났다.

'jonsport' 여기저기 닳아 헤진 가방이었다.

자기도 모르게 피식 실소가 나왔다.

휴게실로 가 '아침부터 녹차'를 뽑아 들고 왔다.


일반인실로 들어선 영태는 어제 같은 자리에 앉아 있는 여자를 보았다.

조심스럽게 자기 자리로 갔다.

가방을 의자 등받이에 걸어놓고 휴게실로 갔다.

"윙~"

동전을 털어 커피자판기에 넣고 밀크커피 한 잔을 뽑았다.

영태에겐 도서관에 나와서 마시는 모닝 커피가 또 하루가 시작 됐음을 알리는 습관이었다.

그 여자가 나타나서 '아침부터 녹차'를 뽑아 갔다.

"사랑을 찾아~ 사랑을 만나 사랑한 나의 모습~"

'허.. 이자식 왠 컬러링!'

병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노래가 2번 반복 된 뒤에 병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다! 오늘은 좀 어때? 오늘도 못 나오냐?"

"어.. 내일까진 집에 있으려구.."

"오후에 농구 한 판 못하니까.. 하루가 길다."

"다른 애들 있잖아!"

"그냥.. 날도 덥고.. 너 없으니깐 별로 생각이 안난다. 아무튼 붓기 빠지고 다닐만 하면 얼른 나와라"

"알았어. 근데 나가도 당분간 운동은 못 할 꺼다."

"그랴.."

영태는 전화를 끊었다.

"맴 매앰 맴~"

휴게실 창 밖에서 매미들이 어지러이 울었다.

'어떤 새끼가 매미가 일주일만 산다고 그런거야! 저 것들은 왜 맨날 울고 지랄이야!'

뜬금없이 매미들을 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