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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인연 - 09 "혹..시 저한테 무슨 볼일이라도?" 걸음을 멈춘 병수가 언짢은 듯 물었다. "아.. 아니에요." "절 따라오시는 것 같아서... 아니면 쏘리요." "저! 잠시만요." 돌아서는 병수를 불러세웠다. "실은.. 들고 있는 그 책.." "그 책 어디서 구입하셨어요?" 들고 있는 책에 시선이 따라갔다. "산건 아니고 동네 도서관에서 빌린건데.. 왜요?" '아!' 순간 구립 옆자리 기분 나쁜 남자와 함께 절룩이며 휴게실을 나가던 남자가 떠올랐다. "저..." "네?" "이 학교 학생이세요?" "아니요. 전에 학생이었죠. 왜 묻죠?" "아니.. 아니에요." "-_ -;; 그럼 전 이만." 병수는 땀에 젖어 달라 붙은 청바지를 손으로 잡아 털고 뒤 돌아 학교길을 걸어 나왔다. '아! ㅎㅎㅎ 그 여자였네!' 돌아 오는.. 더보기
인연 - 08 한 모금 남은 커피캔을 들고 자리로 돌아 왔다. 책상에 티슈를 한 장 꺼내 접어서 깔고 캔을 내려놓았다. 버릇처럼 옆자리를 힐끗 보고 의자에 앉으려는데, 며칠간 옆자리에 있던 책이 보이지 않았다. 슬몃 화가 났다. 며칠간 나름 신경써서 주시하던 그녀였다. 급히 열람실로 가서 도서검색을 해보았다. [.... 대출중] 허탈한 걸음으로 자리로 돌아왔다. 옆자리에 있는 책들이 하나 둘 눈에 들어왔다. 흔히 보는 영어책들과 사전이 있다. '모 하는 인간이야!' 주위를 둘러봤다. 멀뚱멀뚱 눈 앞 30cm에 시선이 고정되어 다른 생각 다른 것이 보이지 않았다. 안되겠다 생각이 들어서 가방에 쓸어 담듯 책을 넣고 일어섰다. 도서관 밖에는 한여름 뜨거운 태양이 딱 사람 콧구멍 높이만큼 공기를 뜨겁게 데워놓았다. 옆자리 .. 더보기
인연 - 07 밥 기운 때문인지 지연은 슬슬 잠이 왔다. 쿠션을 가슴에 대고 자연스럽게 엎드렸다. 잠이 드려는데 잠결에 옆자리 남자가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오후 3시쯤 되었을까? 병수가 절룩거리며 나타났다. 며칠 쉬었다고 그런걸까? 집에 있을 때보다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다. 영태는 꾸벅꾸벅 졸고 있다. 옆자리에서 처음 보는 여자가 잠을 자고 있다. "어? 내일 나온다며?" 사람의 움직임을 느꼈는지 영태가 "스르륵" 엉덩이를 빼며 일어났다. "어 그럴려고 했는데.. 나가자." 병수가 지난번 대출 받은 책을 들고 나갔다. 영태도 휴대폰을 챙겨서 뒤따랐다. 둘은 아주 오랜만에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영태는 게토레이 한 캔을 뽑아 건네주며 병수의 발부터 살핀다. 아직 많이 부어있는 것 같다. "안나온다더니 좀 괜찮냐?" .. 더보기
인연 - 06 해가 느린 걸음으로 먼 산을 넘어도, 옆자리 주인은 오지 않았다. '오늘은 오지 않나보다.' 지연은 자리 주인이 나타나 양해를 구하고 책을 먼저 볼 수 있기를 바랬다. 오전에 일었던 흥분은 이미 자취를 감췄다. 배가 고파왔다. 아까 연거푸 실수를 하던 남자가 힐끗 힐끗 쳐다본다. 기분 나빴다. 지연은 내일 일찍 나오기로 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직도 끝자리의 여자가 가끔 쳐다본다. '의자 넘어뜨리고 핸폰 떨어뜨렸다고 이렇게 오래 쳐다보나?' 영태는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자신도 힐끗힐끗 쳐다보고 있다. 보면 볼 수록, 평범하지만 한겨울 흰 눈 같이 하얀 여자의 얼굴이다. 소박한 이끌림에 이끌려 여자의 얼굴에 눈길이 갔다. 여자가 일어섰다. '벌써 가나?' 일어서서도 영태쪽을 한 번 살피고 무언가 생각하더.. 더보기
인연 - 05 영태의 자리는 에어컨에서 세번째 떨어진 줄 중앙에 있다. 에어컨 바람이 가장 시원하게 들이치는 곳이다. 물론 겨울엔 온풍이 불어 따뜻하다. 사실 졸리다. 어쨌든 영태가 그 좋은 자기 자리로 향하던 중이었다. "끼이익~ 콰당!" 등받이의 갈라진 나뭇결에 셔츠자락이 끼어 의자를 잡아 끌어 넘어뜨렸다. 지연은 무심결에 소리가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바로 옆자리 책상에 대출중이던 그 책이 있었다. 잠시 시선이 머문 순간부터 가슴 깊숙한 곳에서 물결치듯 흥분이 일었다. 늘 다니던 곳이다. 일부러 끼우기도 어려울 것 같은 곳에 셔츠자락이 끼었다. 몇 안돼지만, 사람들의 시선을 상상한 영태는 창피했다. '아, 쪽팔려' 영태는 의자를 일으켜 세우다 자신을 보고 있는 여자를 보았다. 어색한 눈웃음을 지어보이고 자리.. 더보기
인연 - 04 지연은 다음날 일찍 일어나 도서관엘 갔다. 당분간 학교보다는 도서관에 들를 생각이다. 서가에 들러 책이 반납 됐는지 검색해 봤지만, 역시 대출중이다. '재미도 없는 책을 누가 빌려 갔을까?' 딱히 기대는 안했지만, 약간의 실망감에 입술에 힘이 갔다. 서가에서 나와 일반인실로 들어 갔다. 에어컨 근처의 좋은 자리는 대부분 임자가 있는 듯 했다. 물론 그 주인들은 대부분 오지 않은 것 같았다. 지연은 빈자리를 찾아 앉고 책을 폈다. '이자식 많이 아픈가?' 영태는 병수의 빈 고정석을 힐끗 보며, 병수가 늦는 것에 신경이 좀 쓰였다. "병수야! 너 다리를 왜 그렇게 절어?" 병수는 모른척 티 안나게 나오려 했지만, 엄마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아.. 어제 도서관 계단에서 삐끗했어." 습관처럼 둘러 말했다.. 더보기
인연 - 03 늘 그렇듯이 저녁을 먹은 병수는 영태와 함께 농구를 하고 들어왔다. 땀에 흠뻑 젖은 면티가 몸에 달라 붙었다. 둘은 화장실에서 땀을 씻어내고 나왔다. 머리 끝에서 땀인지 물인지 물방울이 송글 맺혔다가 떨어진다. 열기로 붉게 상기된 얼굴은 한참 있어야 가라앉을 태세다. 자판기에서 게토레이 한 캔을 뽑아 한모금씩 돌려 마신다. "아까 떨어지다가 삐끗한 발목이 살짝 쑤시네" 병수가 게임중에 착지를 잘 못한 모양이었다. "울 엄마 친구가 한의원 하는데 가볼래? 나도 가끔 거기서 침 맞는데, 침 맞으면 괜찮아지더라" "한 두번도 아니고 괜찮겠지.. 오늘은 좀 일찍 들어가야겠다." "야, 파스라도 붙이고 좀 더 있다 가" 오늘은 가뜩이나 싱숭생숭하던 영태다. "그냥 갈랜다. 좀 남았냐?" 병수가 갈증이 덜 풀렸나보.. 더보기
인연 - 02 영태는 어느새 다 마셔버린 캔을 쪽쪽 빨고 있다. "들어가서 공부나 하자!" 병수가 건너편 휴지통에 빈 캔을 던지며 휴게실을 먼저 나갔다. 영태는 답답한 마음에 의자를 두 손으로 짚으며 일어선다. "그래! 들어가서 책이나 보자" "슛~!" "탁! 툭!" '아이씨..' 일부러 문까지 걸어가서 캔을 던져보았지만, 휴지통 테두리에 맞고 떨어졌다. 병수는 조심조심 가방을 열고 책을 꺼내 놓았다. '성격과 직업의 상관관계' 지난주에 2주 기한으로 빌린 책이다. 병수는 한냥대학교 아시아와유럽및아메리카역사문화학과를 4.5점 만점에 3.9점이라는 성적으로 졸업했다. 나름대로 우수한 성적이지만, 웬만한 기업에서 '어서 오세요'하고 받아 줄 만한 인기학과는 아니다. 아직 도서관 신세를 면하지 못하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생..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