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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l]샐러리맨 이야기

사랑 - 11 8시가 가까워지도록 조부장이 퇴근을 안하고 있다. 지난주 중국에서 수입해온 원자제가 아직 세관을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애초 신고했던 수입물량보다 컨테이너 한개분량의 물량을 더 들여왔는데, 새로 바뀐 관세청 직원이 문제삼았기 때문이다. 원자제가 일정대로 수급되지 않아서 클라이언트로부터도 클레임을 받고 있는데다, 나름 규모가 큰 계약이어서 회사로서도 잘 헤쳐나가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다. 병수는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실행시켰다가 끄기를 버릇처럼 반복했다. '윙~~' '아직 더 있어야돼?' '조부장이아직집에안갔어-_-;;' 송신버튼을 꾸욱 눌렀다. '윙~~' '그냥나오면안돼?' '알잖아미안해어디들어가서밥먼저먹어^^;' 얄미운 김과장은 박연서 대리를 데리고 일찌감치 퇴근했다. 병수는 아직 신참이어서 하늘 같은 .. 더보기
인연 - 10 커튼이 바람에 날릴 때마다 비추는 햇살에 눈을 떴다. 오랜만에 늦은 밤까지 마신 술이 늦은 아침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병수의 뒷머리를 잡아끌었다. '아, 머리 아퍼.. 오늘 연락 하라고 하셨지..' 아침일찍부터 구립에 나온 지연은 사람들이 열람실로 들어 올 때마다 신경이 쓰이고 있다. '무슨 관계일까?' 지연의 손엔 손 땀이 묻은 하얀 명함 한 장이 들려있다. 지갑속에 있어야 할 명함이 없다. '아!' 짧은 탄성이 입 밖으로 나오기 전에 이미 종결된 사건의 전모가 머릿속에 스쳐지나갔다. 지하철에서 명함을 꺼내 보고는 습관처럼 보던 책에 끼워 넣었고 그대로 반납을 해버린 터였다. 황급히 옷을 걸치고 나와 구립으로 가는 마을 버스를 탔다. 다리도 걷기에 크게 불편이 없을 만큼 좋아져있었다. 햇살은 따가웠지만,.. 더보기
인연 - 09 "혹..시 저한테 무슨 볼일이라도?" 걸음을 멈춘 병수가 언짢은 듯 물었다. "아.. 아니에요." "절 따라오시는 것 같아서... 아니면 쏘리요." "저! 잠시만요." 돌아서는 병수를 불러세웠다. "실은.. 들고 있는 그 책.." "그 책 어디서 구입하셨어요?" 들고 있는 책에 시선이 따라갔다. "산건 아니고 동네 도서관에서 빌린건데.. 왜요?" '아!' 순간 구립 옆자리 기분 나쁜 남자와 함께 절룩이며 휴게실을 나가던 남자가 떠올랐다. "저..." "네?" "이 학교 학생이세요?" "아니요. 전에 학생이었죠. 왜 묻죠?" "아니.. 아니에요." "-_ -;; 그럼 전 이만." 병수는 땀에 젖어 달라 붙은 청바지를 손으로 잡아 털고 뒤 돌아 학교길을 걸어 나왔다. '아! ㅎㅎㅎ 그 여자였네!' 돌아 오는.. 더보기
인연 - 08 한 모금 남은 커피캔을 들고 자리로 돌아 왔다. 책상에 티슈를 한 장 꺼내 접어서 깔고 캔을 내려놓았다. 버릇처럼 옆자리를 힐끗 보고 의자에 앉으려는데, 며칠간 옆자리에 있던 책이 보이지 않았다. 슬몃 화가 났다. 며칠간 나름 신경써서 주시하던 그녀였다. 급히 열람실로 가서 도서검색을 해보았다. [.... 대출중] 허탈한 걸음으로 자리로 돌아왔다. 옆자리에 있는 책들이 하나 둘 눈에 들어왔다. 흔히 보는 영어책들과 사전이 있다. '모 하는 인간이야!' 주위를 둘러봤다. 멀뚱멀뚱 눈 앞 30cm에 시선이 고정되어 다른 생각 다른 것이 보이지 않았다. 안되겠다 생각이 들어서 가방에 쓸어 담듯 책을 넣고 일어섰다. 도서관 밖에는 한여름 뜨거운 태양이 딱 사람 콧구멍 높이만큼 공기를 뜨겁게 데워놓았다. 옆자리 .. 더보기
인연 - 07 밥 기운 때문인지 지연은 슬슬 잠이 왔다. 쿠션을 가슴에 대고 자연스럽게 엎드렸다. 잠이 드려는데 잠결에 옆자리 남자가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오후 3시쯤 되었을까? 병수가 절룩거리며 나타났다. 며칠 쉬었다고 그런걸까? 집에 있을 때보다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다. 영태는 꾸벅꾸벅 졸고 있다. 옆자리에서 처음 보는 여자가 잠을 자고 있다. "어? 내일 나온다며?" 사람의 움직임을 느꼈는지 영태가 "스르륵" 엉덩이를 빼며 일어났다. "어 그럴려고 했는데.. 나가자." 병수가 지난번 대출 받은 책을 들고 나갔다. 영태도 휴대폰을 챙겨서 뒤따랐다. 둘은 아주 오랜만에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영태는 게토레이 한 캔을 뽑아 건네주며 병수의 발부터 살핀다. 아직 많이 부어있는 것 같다. "안나온다더니 좀 괜찮냐?" .. 더보기
인연 - 06 해가 느린 걸음으로 먼 산을 넘어도, 옆자리 주인은 오지 않았다. '오늘은 오지 않나보다.' 지연은 자리 주인이 나타나 양해를 구하고 책을 먼저 볼 수 있기를 바랬다. 오전에 일었던 흥분은 이미 자취를 감췄다. 배가 고파왔다. 아까 연거푸 실수를 하던 남자가 힐끗 힐끗 쳐다본다. 기분 나빴다. 지연은 내일 일찍 나오기로 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직도 끝자리의 여자가 가끔 쳐다본다. '의자 넘어뜨리고 핸폰 떨어뜨렸다고 이렇게 오래 쳐다보나?' 영태는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자신도 힐끗힐끗 쳐다보고 있다. 보면 볼 수록, 평범하지만 한겨울 흰 눈 같이 하얀 여자의 얼굴이다. 소박한 이끌림에 이끌려 여자의 얼굴에 눈길이 갔다. 여자가 일어섰다. '벌써 가나?' 일어서서도 영태쪽을 한 번 살피고 무언가 생각하더.. 더보기
인연 - 05 영태의 자리는 에어컨에서 세번째 떨어진 줄 중앙에 있다. 에어컨 바람이 가장 시원하게 들이치는 곳이다. 물론 겨울엔 온풍이 불어 따뜻하다. 사실 졸리다. 어쨌든 영태가 그 좋은 자기 자리로 향하던 중이었다. "끼이익~ 콰당!" 등받이의 갈라진 나뭇결에 셔츠자락이 끼어 의자를 잡아 끌어 넘어뜨렸다. 지연은 무심결에 소리가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바로 옆자리 책상에 대출중이던 그 책이 있었다. 잠시 시선이 머문 순간부터 가슴 깊숙한 곳에서 물결치듯 흥분이 일었다. 늘 다니던 곳이다. 일부러 끼우기도 어려울 것 같은 곳에 셔츠자락이 끼었다. 몇 안돼지만, 사람들의 시선을 상상한 영태는 창피했다. '아, 쪽팔려' 영태는 의자를 일으켜 세우다 자신을 보고 있는 여자를 보았다. 어색한 눈웃음을 지어보이고 자리.. 더보기
인연 - 04 지연은 다음날 일찍 일어나 도서관엘 갔다. 당분간 학교보다는 도서관에 들를 생각이다. 서가에 들러 책이 반납 됐는지 검색해 봤지만, 역시 대출중이다. '재미도 없는 책을 누가 빌려 갔을까?' 딱히 기대는 안했지만, 약간의 실망감에 입술에 힘이 갔다. 서가에서 나와 일반인실로 들어 갔다. 에어컨 근처의 좋은 자리는 대부분 임자가 있는 듯 했다. 물론 그 주인들은 대부분 오지 않은 것 같았다. 지연은 빈자리를 찾아 앉고 책을 폈다. '이자식 많이 아픈가?' 영태는 병수의 빈 고정석을 힐끗 보며, 병수가 늦는 것에 신경이 좀 쓰였다. "병수야! 너 다리를 왜 그렇게 절어?" 병수는 모른척 티 안나게 나오려 했지만, 엄마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아.. 어제 도서관 계단에서 삐끗했어." 습관처럼 둘러 말했다.. 더보기